시간을 봉인하는 작업..

寫眞은 내가 카메라로 하는 言語 이다.

禪 房

오면 고맙고...

恩彩 2013. 2. 3. 09:22

 

 

 

 

 

 

 

 

 

오면 고맙고, 가면 더 고맙고/이미령(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식당에서 단골손님이 데리고 온 어린 아이들이 소란을 피우자 식당 주인은 난감해졌습니다. 손님의 아이를 야단칠 수 없고 다른 테이블 손님 눈치는 보이고 해서 말입니다. 음식 값을 치르고 나오는 나에게 그 식당 주인이 속삭였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당신들 손자더러, ‘오면 고맙고 가면 더 고맙다’고 그러잖아요. 지금 딱 내 심정이 그래요.”
돈을 벌어주니 고맙지만 얼른 먹고 사라지기를 바라는 솔직한 식당주인의 말에 한참 웃었습니다.


‘오면 고맙고 가면 더 고맙고.’
조부모와 손자손녀의 관계를 어쩌면 그리도 정확하게 표현하였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의 손자들은 모처럼 찾은 할아버지 집에서 편히 머물지 못하고 어서 ‘우리 집에 가자’며 졸라대기 일쑤입니다. 아이들은 조부모의 손도 한번 잡아보지 않습니다. 쭈글쭈글해서 징그럽다고까지 말합니다. 심지어는 냄새 난다며 외면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용돈 몇 푼 쥐어주면 억지로나마 곁에 있어줍니다. 그리고 손자의 부산스러움을 성가시게 느끼는 조부모들도 많아진 것이 현실입니다. 함께 살아본 적이 없으니 서로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적적한 집안에 아이들이 찾아오면 심심하지 않게 해줘서 고맙지만 딱히 공통의 이야깃거리도 없으니 서먹하게 앉아있는 것보다 빨리 제 집으로 가버리면 홀가분해지니 더 고맙다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 외가에서 자란 적이 있는 나는 지금도 기억의 상당한 부분을 외할머니가 차지하고 있음에 놀랄 때가 많습니다.
할머니의 그 곱고 정갈한 맵시, 함부로 남의 말을 옮기지 않는 과묵함, 아무리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참고 견디는 힘, 눈부신 햇빛 아래서 꽃을 돌보고 새 모이를 주시던 그 아름다운 뒷모습, 하루도 거르지 않고 또박또박 써내려가시던 가계부….
참으로 묘한 일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내 이야기 속에는 항상 외할머니가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 “외할머니는 이러셨다”라든지, “외할머니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말을 꼭 하게 되는 것입니다. 외할머니는 외손녀인 나에게 어머니의 어머니가 아니라 또 한분의 어머니이셨습니다.


최근 은퇴 후 아주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하던 거사님 한 분이 외손녀를 돌봐야 한다며 바깥활동을 접으셨습니다. 그리고 역시나 고운 보살님 한 분은 내년부터 손자를 봐줘야 한다면서 마음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친구들은 절대로 손자 맡지 말라며 온통 반대라고 합니다. 기껏 길러봐야 은혜도 모르고 제 부모만 찾으니 아무 공도 없을 뿐더러 힘에 부치고 자칫 원망만 살 뿐이기 때문입니다.
손자는 예쁘지만 며느리가 혹은 사위가 하는 짓이 영 마땅치 않아서 돌봐주기 싫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요즘 어르신들 중에는 아예 처음부터 손자를 봐주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두 분은 말씀하십니다.
“친구들은 말리지만 암만 생각해봐도 정답이 없어요. 내가 정답을 만들어야지요.”
정작 젊은 부모는 낳았으니 길러야 한다는 의무감, 남들보다 잘 가르쳐야 한다는 부담, 그리고 자식 때문에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여유를 빼앗겼다는 서운함 등등이 얽혀서 정신없이 세월을 보내게 마련입니다.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온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과 똑같이 희로애락을 겪느라 잔정이나 재미를 느낄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숨 가쁜 삶을 어느 정도 거쳐 오고 난 뒤에야 새삼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사람을 낳아서 기르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바로 그 시절이 손자손녀를 보게 되는 때입니다. 그래서 제 자식에게는 엄격하기 이를 데 없던 사람들도 손자손녀에겐 한없이 다정다감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기꺼이 황금같은 노년의 여유를 손자에게 양보하는 두 분에게는 손자들이란 ‘오면 고맙고 가면 더 고마운 애물단지’가 아니라 당신의 무르익은 연륜과 지혜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더욱 알차게 삶을 가꾸어갈 ‘희망과 생명의 싹’일 것입니다.
불교를 상징하는 것은 지혜와 자비라고 합니다. 이 둘은 바깥에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 길러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촉촉하게 물을 주고 양분을 주어야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납니다. 당신의 품을 열어주고 수고를 자청하시는 조부모, 외조부모님들은 아이의 마음속에 튼튼한 보리수를 자라나게 할 세상에서 가장 솜씨 좋은 정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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