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면 짝사랑의 기억 밖에 없는 나는
일찌감치 사랑니를 네 개나 뺐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제대로 된 사랑 한번 못해 본 내게
그렇게도 많은 사랑이 뿌리내려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니
사랑이란 이름을 가진 것들은 아픔도 준다며
통증의 근원은 미리 제거해 두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의사는 나를 설득했다
아픔 없는 사랑은 꿈꿔 본 적도 없지만 비겁하게도
아직 싹도 나지 않은 사랑까지를 포기한 후
혀는 자꾸만 허전한 사랑의 흔적을 더듬었다
이제 내 몸에 사랑은 없구나
아파도 좋으니 물어 달라고 어여쁜 사랑이 온대도
그 사랑 물 수가 없겠구나
비어 있는 사랑 대신 살이 차오르고
더듬어도 더 이상 사랑의 흔적조차 없다
날 잊어선 안돼 가 아니라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시작해 보라는
한량없는 사랑의 자취가 아닌가
사랑을 뿌리째 뽑아 내고서야 깊은 사랑을 경험하다니
사랑이라면 그만은 해야하지 않겠나
나혜경 - 한량없는 사랑